2023. 12. 21. 00:35ㆍ일상/잡담
2023년 12월 말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현재 생각들을 디지털화 시켜보고 싶어 노트북을 키게 되었다. 난 무엇을 하고 있고 인생 어느부분을 살아나가고 있는지. 어떤 용감한 결정을 했고 어떤 책임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가는지 따위의 생각들이 연말의 내 머릿속을 가벼우면서도 시리게 스쳐지나간다. 난 4개월 전 부터 타지에 와 아름다운 시간들을 많이 만들었다. 꼭 와인잔과 장미꽃이 없어도 낭만을 챙길 수 있었던 나날들. 이후에도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필자는 최근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많이 잠긴 듯 하다. 그러한 생각을 털어내고 출근길 모서리로 대충 쌓여진 더럽혀진 눈뭉치들과 차가우리라 느껴질 만큼 푸른 창공이 담긴 일상에 집중하기 위해서 잡담을 배설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자주 가질 듯 하다. 필자는 최근 스스로에 대한 다양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덜 깨우쳤었던 개인의 일상적인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랄까.
이러한 고민들은 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
난 정신이 말똥한 시간이 어색해,
모든 행동이 취했을 때와는 다르게 어색해 지거든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으려 의식하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져
난 취할 때 내 모습이 나와
"
그저 유쾌하다 생각했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술이 들어가자 나온 이야기였다. 분위기는 꽤나 진중하게 흘러갔기에 나도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공감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 또한 술이 들어가기 전 까지 그의 반응에 귀기울이고 그에 맞도록 행동하려 했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꼭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대화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마치 디지털 신호와 아날로그 신호의 차이와 같은 것 처럼 뚝, 뚝, 뚝 끊기는 어떠한 추상화가 없이 하나로 일정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나는 말투, 행동이 어색할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를 가끔 듣기도 하고,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 남들의 시선을 상관안하는 듯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는 것일까. 아닌가, 그들의 시선을 진정 생각했다면 이러한 행동이 안나와야 하지 않는가. 그 무엇도 제대로 확답할 수 없다. 이러한 행동들은 고쳐야 하는 부분들인가. 2019년 2월 월간 윤종신에 수록된 곡 '모난돌' 가사 처럼 이처럼 삐뚠 내 모습이 소중한 부분 아닐까.
나를 한번 돌아보자. 타인과 대화함에 있어서 난 정적을 좋아한다. 특히나 모르는 상대와의 자리에서 생기는 잠깐의 정적은 상대를 더욱 뚜렷하게 한다.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상대의 몸짓, 시선, 숨소리 등 약간의 긴장과 어색함이 흐를 때를 즐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난 재밌다. 하지만 불편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 취하면 이러한 정적이 더욱 재밌게 느껴지는데, 난 타인의 불편함에 재미를 느끼는 듯 하다.
개그도 거지같이 재미없는 개그를 했을 때 상대방이 질색하면 더욱 재밌다. 나 혼자 웃고, 웃기려 노력하고, 상대의 반응은 내 기분보다 그 비중이 훨 덜하기에 난 어느새 엉뚱한 말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요즘엔 조금씩 고쳐지는 듯 한다.
앎을 알리려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또 얼마나 두려운가. "내가 무언가를 안다" 고 확답하기 위해서 보장되어야 하는 지식과 사실들,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명제들이 모두다 따라나서야 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떠한 정보를 옮기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보를 통해서 일종의 에디톨로지를 활용한 편집 혹은 재창작 과정이 있어야 안다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인의 생각과 세상의 진실을 옮기는 스피커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한 정보들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의 능력이 앎의 능력이다. 이스라엘 랍비들이 하는 말 마따나, 진정 무언가를 안다고 한다면 그걸 입밖으로 자유자재로 내뱉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대로 주무르고 확장시켰다가 축소시켰다가 경험을 버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난 바보같은 모습도 좋다. 무언가를 물어도 확답보단 "~인것 같다"라고 매번 이야기 한다. 이런 모습이 좀 답답할 순 있겠지만 난 아는 척 하는 모습이 덧없다 계속 느껴왔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모르는 척 하면서 남들의 아는 척을 보는게 얼마나 우습던지. 그러한 모습을 보려 일부러 내가 잘 아는 주제를 던져두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보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런 후에 정말 잘못된 지식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내가 확실히 알고있는 부분만 넌지시 흘려 정보를 바로잡으려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은 덧없는 대화를 하기 위해 모였을 때에 국한된다. 내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자리에서는 잘 이야기 해야한다.
어쨌든 이러한 내 습관은 때로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나 스스로에게 너무 쉬운 포지션을 만들어 던져둔터라 정말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한다기 보단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는 측면에서 대화를 종료하려 한다거나 하는 부분들? 그런 대화는 끝난 후 하루 이틀이 지나면 아무 기억이 남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과 짧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할 뿐. 이러한 내 모습은 왜 만들어진걸까. 어떤 이유에선지 찾으려면 정말 많은 부분을 들춰내어 분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진 못하겠다. 그 이유는 필자는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한 개인이고,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일터.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남에게 맞춰주는 삶을 사는 쪽으로 계속 변화중이라는 것이다. 원래 내 모습을 돌아보면 못나보일 때가 많았기에, 지금도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있기에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려 한다. 그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는 스스로의 충동을 조금 조절해도 여전히 좋은 사람과 있으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분류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인가도 생각해본다. 스스로가 분류될 수 없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타인이 손쉽게 분류해 버린다면.. 기분나쁜 사실로 다가올 수 있다. 나도 사람을 케이스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소중한 사람 몇몇은 어느 집단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내게 독보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어떤 타인과와 섞일 수 없이 내게 소중한 존재이다. 난 '나쁜 사람' 이라는 집단은 웬만해서 비워두려고 한다. 만약 기분나쁜 기억을 만든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쿨해보이려고 한다기 보단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인이 아니기에 그런 듯 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분류도 통하지 않아서, 그 사람만 생각하면 신기하고 좋다. 아니, 분류가 통하지 않는다기 보단 그럴 의지조차 들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참 좋아한다. 작품 여주인공 염미정은 말한다.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이러한 그녀의 마음은 추앙이라는 이름의 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다. 사랑은 정신이다. 정신의 사랑은 몸짓으로 발현된다. 그렇지만 몸짓이 없다고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다. 몸짓이 없어도 사랑은 건재하다. 사랑없는 몸짓은 의미없지만 사랑을 타고오는 몸짓은 아름답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혹은 그녀를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삶의 목적성을 잃어버린 사람. 무언가를 향해 가고는 있지만 무언가가 도대체인지 가늠이 되지 않고 막막한 누군가. 겉으로 보기에 그러한 사람들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 하다. 사랑할 시간 따위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다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들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면 삶의 목적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깨어있는 시간이 노동의 시간일 수가 없다.
요즘 가수 이영훈 노래에 푹 빠져있는 필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의 노래와 함께 한다. 특히나 '오늘의 안녕'과 같은 노래는 추운 겨울과 참 어울리는 노래다. 누군가에게 춥고, 시리고, 아프고, 불안한 이 계절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따스함을 공유하고, 손을 맞잡고, 파란 하늘이 예쁘고, 가로등 불빛 마저 길가에 아름답게 번질 수 있다.
이영훈 노래 가사처럼 이 행복이 사라지지 마라, 떠나가지 마라 읊조리며 추운 겨울을 함께하는 누군가에게 감사하다고 뭉뚱그려본다. 이규호 노래 가사처럼 아름다웠고 그리워질 날들이다 생각하게 될 날들이다.
며칠 전 '티파니에서 아침을' 을 보았다. 이전부터 항상 보고싶던 작품이었는데 미루다 이제서야 본 것이다.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가 눈에 띄었다. 오드리 햅번은 속칭 '돈 많은 아저씨'를 휘두르며 돈을 버는 여자로 나오는데, 그래서인가 영화 속 홀리 고라이틀리(오드리 햅번)는 사랑을 믿고 사는 사람이라기 보단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깊었는데, 이러한 홀리가 바뀌게 되는 과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인 폴 바잭은 소설가이고, 로맨틱한 남자이다. 그도 실은 홀리와 다를 바 없이 다른 여자와 돈이 오가는 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내 홀리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홀리는 이를 부정하며 생겨나는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틀어막으며 도망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폴은 홀리에게 말한다.
"
당신은 비겁해요. 용기도 없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좋아, 인생은 사실이다' 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거겠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거에요 참다운 행복을 얻기위한 진정한 기회니까 서로를 소유하기도 하는 거에요
당신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 하며 길들지 않은 것이라 하죠 그러면서 누군가가 우리에 가둘 것을 두려워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당신은 이미 우리에 갇힌 거에요. 자기가 만든 우리에 말이죠
"
홀리는 떠나버린 폴의 말을 생각하다가 그가 준 결혼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폴을 찾아 나선다. 그녀 또한 사랑하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 자신이 만든 현실이라는 틀에 사로잡혀 진정한 현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건 물론 멋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자기의 모습에 취해, 도회적인 이미지를 건설해내기 위해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무언가가 되고 있는 것 아닐까. 나도 영화를 보면서 사랑을 할 때 진지하고 유치하게 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잔잔히 울리는 이름모를 재즈를 들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는게 더 이상 이상한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곧 크리스마스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무엇인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그럴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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