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개 - 널 잡지 않았던 건 내 맘이 아니야. 너를 미워한게 아니야, 메이트 - 아니야
2014 Mate EP END OF THE WORLD - 아니야
음악소개의 이유
"실망하기 싫어 기대하지 않는다" 는 말을 주로 하는 필자는 타인에게 있어 항상 적정선의 기대를 가지려고 한다. 기대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바운더리를 정해두고 "이 사람은 어떤사람, 이 사람은 어떤사람 하며 적당한 분류작업이 이루어지면 그 사람에게 그에 맞는 기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분류과정이 통하지 않는 소중한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적당선의 기대를 하기가 힘들어서 항상 기대 정도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고 혼자 씁쓸해 하는 악습관이 언젠가부턴가 생겨났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고, 모진말도 한 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메이트의 '아니야'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품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같아서 예전부터 참 와닿았다. 정준일의 '고백'이 설렘가득하고 풋풋한 '고백'이 아니고 이별을 준비하다가 문득 진정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낀 후 뱉는 '고백'인 것 과 같이. 20대 초 아픈 풋사랑을 겪고 이별할 적 포옹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던 정준일의 '안아줘'가 진짜로 헤어지기 전 한번만 안아달라는 뜻이 아니고 날 붙잡아 달라는 일종의 반어법이듯이. '아니야' 또한 어떤 '아니야' 인지를 잘 생각하며 들으면 여러 의미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밴드 메이트의 마지막 앨범 END OF THE WORLD의 발매 후 후발매 된 곡인 만큼 뭔가 의미가 있는 노래같기도 해서 그런가 난 이 노래가 참 좋다. 발매 이후 메이트 활동이 멈춰지고, 2018년 경 메이트의 보컬이었던 정준일의 '유희열의 스케치북' 에서 부른 '아니야'가 참 슬프게 느껴진다.
- 가사 -
알아 다 알아 내가
눈물 말라버린 너의 얼굴 위로
검게 드리워진 두려움과 떨림
너는 힘겹게 내게 말했었지
헤어지자 우리 너무 아프잖아
이제 우리 그만하자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난 두려워 우리의 날들이
고마웠었어 항상
아이처럼 포근히 날 다독이던 너
내게 너무나도 따스했던 너
영원히 잊을수는 없을거야
헤어지자 우리 너무 아프잖아
이제 우리 그만하자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우리앞에 놓인 운명의 끝
행복하지는 마 다른 사람만나
찬란했던 우리의 날보다
너 없는 하루를 살 수 있을까
난 그게 두려워
꿈에서 너를 만났을 때
어쨌든 살아가는 네가
너무 싫어서 널 저주했었어
불행하길 바란다는게
널 미워해 하는말이 아니야
헤어지지 말자
사실 나 알고있었어
철없게 굴어서 참 미안해
행복하길 바래 다른 사람만나
불행했던 우리의 날 보다
떠나려는 널 잡지 않았던 건
내 맘이 아니야
너를 미워한게 아니야
음악잡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큰 기대를 하고. 그 기대를 믿고 살아가는 필자는 언젠가부터 "실망하기 싫어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기대에 못미치는 탓에 실망이 늘어난 경험이 있어서 였을터. 그래서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미래를 꿈꾸는 건 참 달면서 쓰게 느껴진다. 내 기대와 다르게 미래가 흘러간다면..? 이라는 가정들. 그리고 현실들. 미래는 꿈꿀 수 있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걸까. 너무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는 것일까. '아니야' 가사의 '난 두려워 우리의 날들이' 라는 가사가 그러한 부분을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지금 좋아도 미래를 생각해서 아프면 지금 아픈걸까. 아닌걸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간을 즐기자" 라고 이야기하는 나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걸까. 아닌걸까? 그런 점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건 오히려 즐겨야 할 지금을 해치는 것 아닐까.
신년 계획을 세우고, 5개년 계획을 세우는 것과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 는 그렇게 분석적일 필요가 없다. 서로 기대하는 모습과 기대하는 일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모습을 사랑하지만 더 큰 기대를 지우면서 별 다를 것 없는 행동마저 상처로 느끼는 것.
원래 파악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일때는 또 어떤가. 이것도 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알았다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멋대로 판단한 것은 아니었는지. 혹은 원래 파악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이지 않았음에도 내가 생각하고픈대로 생각했지는 않았을런지. 그렇게 철없게 군 그늘들은 추억 끄트머리에 남아붙기 시작해 어느새 부터는 추억마저 보이지 않게 만든다.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핑계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아파하는게 부질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주제넘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그런 감정들을 내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진정 아프게 하려고 뱉는 말보다 이렇게 잔잔히 쌓이는 실망감과 서운함이 더 무서운 듯 하다. 어느새부터인가 처음 내가 알고있던 느낌과는 달라진 상대를 바라보면 온전한 사랑을 주기도 힘들터이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 있으면 불행하단 사실들을 인정하는 것도 힘들것이다. '불행' 가슴아픈 단어지만 둘 중 누구 하나라도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다면.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힘들다면은 그건 행복이라기 보단 불행아닌가. 불행해도 붙어있고싶은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것인지 몰라도 헤어짐을 망설이게 만들고 나 자신을 최면하게 만든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난 사랑한다" 그런 말을 되뇌이는 내 자신을 보는게 더 비참해서 더 불행해지는 것일수도 있을텐데.
헤어짐은 너무나도 아프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는 아픔보다 덜 아프다고 여기면 헤어지는 듯 하다. '아니야' 가사에서도 그렇듯 '찬란했던 우리의 날' 들이었다면 헤어지지 않겠지. 마지막에서야 노래의 화자는 '불행했던 우리의 날' 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너무 아프다는 헤어짐의 이유를 인정한다. '불행했던 우리의 날'을 인정한 순간부터는 되돌릴 수 없고 담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영영 떠날 것임을 알것이기에 가사 마지막에서야 절규를 담아 슬픈 인정을 해낸다.
그렇게 헤어짐을 하고 나서 상대방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 보다 불행하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걸까. 대부분 자존감의 상처를 메꾸기 위해서, 이별고백을 받은 내가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헤어진 당신이 내가 없을 때 보다 너무나도 잘 살고 행복하다면 나는 얼마나 아플까. 나는 가슴아픈 어떠한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상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고들은 본인 스스로에게 고통스럽기에 많은 이들은 이별한 상대를 폄하하고 저주하는 듯 하다.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가끔씩 나오는 뷰티유튜버가 있는데. 평소 뷰티유튜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뜨는 이유가 궁금해서 클릭해보았다가 해당 유튜버가 화장을 하면서 자신이 만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곰곰히 들어보니 그녀는 소수의 몇몇의 남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듯 했다. 만나게 된 이야기 부터 헤어지게 된 이야기 까지. 들어보면 실은 그녀도 그리 당당치 못할것 같은 이야기들이었는데 댓글에는 대부분 그녀를 옹호하는 반응들이라 그러한 기분에 취해있는 것 같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함부로 생각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드는 감상평같은 거라면 이유가 되겠지.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를 수용하는 것일지 모른다.
'헤어짐'. 볼 장 다본 두 남녀에게 참 어울리는 단어이다. 더 이상의 애정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는 두 남녀는 헤어짐을 겪으며 비로소 얼마나 상대를 사랑했는지, 거기에 무뎌져있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행복하길 바래, 다른 사람만나 불행했던 우리의 날보다"라는 말을 뱉으며 한때 시리도록 사랑했던 상대방이 또 다른 이성을 만나 행복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걸 응원해준다니. 모든 마음이 떠났을 때야 가능한 말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별은 이러한 말을 내뱉은 사람까지도 상대를 한번 더 생각하게끔 만든다. 모든 걸 다 놓아준 줄 알았는데 진정 놓아야 할 때에, 다시 보지 않게될 때에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본심을 느끼는 것이다. 상대에게 서운하고, 화가 나고, 짜증나는 것은 그 순간에 모든 부수적인 감정 찌끄레기들일 뿐, 남는 것은 상대방이 없어진 내 인생과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상대 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떠나려는 때에 사랑했던 그대를 잡지 않은 것이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너를 잡고싶었지만, 그걸 느꼈지만 다시 만나게 될 때의 악순환이 두려웠기에. 진심은 그러하지 않지만 기대와 실망이 이러한 가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마지막 가사는 "너를 미워한게 아냐" 이다. "미워한게 아니다" 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화자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터. 화자는 떠나는 상대에게 "너를 미워한게 아니다, 너를 사랑한 것이다"를 말하고 싶을 것이다. 사랑했기에 미워하는 감정이 들었다고 착각할만큼 그대를 애착했고 집착했다는 것. 사랑은 아름답지만 상대를 소유했다고 저지르는 집착은 점차 상대방에게 부담으로 다가서고 끊어지지 않을듯한 두사람 사이의 접착제도 점점 곪아가기 시작한다.
사랑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럴 때에 돈을 모으고,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집을 사고, 가족에게 충실하며, 몸을 가꾸는 게 중요한 걸까. 과연 그럴까. 돈을 모으고,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집을 사고, 가족에게 충실하며, 몸을 가꾸는 이유는 뭘까. 사랑받기 위해서 아닐까. 사랑은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감정이다. 그러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 만큼 사랑의 부작용을 생각하며 하지 않노라 결심해야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성숙한 사랑을 해야하는 것이 중요한데. 성숙한 사랑,, 말로는 참 쉽지만 하기는 어려운 사랑.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나 되든 상대에게 얼마나 가까운 이성친구가 있든, 의심하지 않아야 가능한 사랑.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한 번씩 고민해보며 결론맺지 못할 고민을 알면서도 전개해본다.